*2008년 6월 24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얼마 전 우리나라 영어학원 계에 큰 발자취를 남기신 열정적인 영어 강사이자 유명한 영어 교재의 저자인 이익훈 선생께서는 처음 학원과 인연을 맺는 학생들과의 고리를 Karma(카르마) 라는 차별화된 단어로 연결하고자 하셨다. 처음 이 단어를 듣고 도대체 무슨 뜻인가 싶었는데 ‘인연’이란 뜻으로 해석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실 카르마란 우리가 알고 있는 단순한 “인연”이란 뜻을 넘어서는 말이다. 카르마란 본디 흰두교와 불교에서 쓰이는 말로서 업(業)이라고도 하며, 생각한 것이 원인이 되어 그 결과가 현실로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즉, 인생은 마음에 그리는 대로 이루어지며, 강렬하게 생각하는 것이 현실이 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종교적으로 접근하려면 아마도 좀더 깊은 종교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리라 보고, 영어 식의 현실적인 표현을 빌리자면 “Perception makes reality”가 되려나?
조금 멀리 온 듯싶다. 그저 처음의 소박한 뜻인 “인연”으로 돌아가보자. 요즘 “인연”이라는 말이 내 생각의 주변을 맴돈다. 어찌 보면 갑작스럽게 미국 행을 결정했고 이 결정은 나의 다른 어느 결정보다도 독립적이면서 한편으로는 독단적이고, 빠르고 과감했으나 또 한편으로는 이기적인 선택이었다.
생각하는 것은 내가 내 안의 결정을 했다고 해도 그걸 막을 수도 있는 현실적인 문제의 요소들이 여기저기 숨어 있었다는 것이다. 나이라는 현실적인 벽이 있었고 연관하여 비자신청 문제도 그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 기숙사에 안착하여 이 안에서 다른 이들과 연을 맺는 데는 그 어느 요소도 크게 부각되어 나를 가로 막지 않았다. 다행이다 또는 불행이다 라고 딱 잘라 말하지 않는 것은 진행형인 현재 때문에 다소 이른 감이 있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반대로, 예상되는 문제의 수위가 매우 낮았던 나와 똑 같은 선택을 한 몇몇의 친구들에게는 너무나도 커다란 걸림돌이 되어 상처를 입히는 일이 있었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는 직선의 거리를 우회해서 멀리 돌아와야 하는 어려움을 주었다는 걸 알고 있다. 물론 굳이 인연이라는 말을 쓰지 않더라도 새로운 만남과 동일한 선택의 중압감을 같이 나누고 어깨를 기대고 함께 공부할 친구들에 대한 기대를 안고 있던 여기 일련의 무리들에게도 이 모든 사건이 참으로 어이없고 당황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회자정리라고 모든 만남에는 헤어짐이 있고 헤어짐에는 반드시 다른 만남이 있기 마련이다. 내가 인연의 고리를 생각하는 건, 지금의 내 삶의 인연이 소중하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며, 닿지 못한 인연에 대한 아쉬움과 더불어, 싫든 좋든 또 다시 인연을 맺게 될 다음 후배들의 행로가 좀더 가벼웠으면 하는 이유에서이다.